한샘글로벌 34년 분투기: 창업자 회고

다음 기사는 한샘글로벌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로서 34년을 한샘글로벌을 끌어가고 있는 김양숙대표의 글입니다. 한샘글로벌의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도전과 극복의 기록입니다. 한샘글로벌의 업력은 34년이지만 대표이사 자신의 커리어로는 40년을 맞이하는 시기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망해 보는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커리어의 시작

집 근처의 대학에서 영어 교육을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였던 1984년 3월, 취업한 미국계 한국 기업에서 소비자를 위한 사용설명서와 수리와 교체에 관한 정보를 담은 서비스 매뉴얼을 작성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테크니컬 라이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는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군이 명칭으로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지인들이 “지금 뭐 하노?” 묻는 질문에 매뉴얼이 어쩌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다들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내 회사는 미국 전역의 대규모 가전 유통 매장을 가졌던 Tandy Corporation의 한국 생산 기지였다. Tandy는 Radio Shack, Safe House, Realistic 등의 브랜드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통신 장비, 오디오 장비, 컴퓨터, 보안 시스템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Radio Shack 매장에서 팔릴 수많은 제품에 대한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 역할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 전량에 대한 사용설명서와 서비스매뉴얼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영어로 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영어를 전공한 내가 선택된 것이지 해당 직업이 필요로 하는 어떤 자질도 어떤 기술도 평가한 이도 없었고 가르친 이도 없었다. 2000명이 넘는 Tandy Korea에서 단 한 명 조직으로, 난 밑바닥부터 그 일을 익혀가야 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Radio Shack의 다수 상품이 첨단 기술 제품이 아니라 팔로잉 제품이었고 유사 제품이 연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매뉴얼의 구성과 형식과 문체를 따라할 수 있는 다수의 선행 제품 매뉴얼이 존재했고 그것이 내겐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내 작업은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랐고 회사는 1차 Draft 매뉴얼까지만 한국에서 작업하던 것을 Final Production까지 한국에서 총괄해서 작업할 수 있도록 일본의 Tandy Corporation으로 파견 연수를 보냈다. 1986년, 해외 여행은 허가 받아야 하던 시절, 더군다나 결혼하면 커리어가 끝난다고 생각하던 여자에게 1년의 해외 연수는 큰 기회였고 특혜였다.

일본 Tandy에서 미국의 Tandy Documents Center와 소통하면서, Draft, 1st Proof, 2nd Proof, Final, Printing까지 전 공정을 진행하는 것을 익혔다. 당시의 훌륭했던 동료들에게는 지금도 감사하다. 그들은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준 선생이었고 친구들이었다.

1년의 연수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회사 내에서 매뉴얼 제작 파트를 꾸리고 프로젝트 리더로서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89년 당시의 극심했던 노조활동으로 Tandy는 한국에서 철수를 결심하게 되고 갑자기 직업을 잃게 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여러 기업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고 나는 Nokia의 한국 생산 거점이었던 Tandy Mobira Communication에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갔다.

한샘글로벌: 미약한 시작

한샘글로벌의 시작은 미약했고 행운의 연속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고 있었던 팩시밀리 제품이 처음으로 수출되는 기회를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삼성 팩스를 구매한 바이어 기업이 Radio Shack 이었던 것이다. 바이어는 삼성에게 Tandy Style Guide에 맞춰 매뉴얼까지 완료해서 제품과 함께 납품해 주길 요청했고 삼성은 영어로 매뉴얼을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이 사실을 듣게 된 사람 중에 Tandy 전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는 내 존재를 삼성에 알려 주었고 이 과정 끝에 한샘글로벌이라는 독립된 사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역할만 하고 있던 내가 그림이나 편집디자인을 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 Tandy 시절 함께 일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한명과 함께 한샘글로벌을 만들게 되었다. 창업에 대한 야망도 없었고,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사는 것이 원칙이었던, 뼈속까지 월급쟁이 기질이었던 내가 한 조직의 장으로서 세상과 맞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한샘글로벌의 생존권을 쥐고 있던 고객사마저 적극적으로 한샘글로벌이 기업으로서 면모를 갖춰나갈 수 있도록 지도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그 후 오랜 시간을 여전히 월급쟁이의 마인드로 내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면 월급 정도는 벌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마치 우리가 삼성의 한 부서인 것 처럼, 고객사의 시장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객사가 이뤄가는 성공이 내 일처럼 기쁘고 뿌듯했다.

작은 오피스에서 2인으로 시작했던 한샘글로벌은 이후 8명, 16명, 40명으로 점점 커지게 된다.

글로벌 기준 따라잡기

고객사의 성장은 한샘글로벌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고 해결해 가야 했다. Radio Shack 스타일의 매뉴얼에 익숙해 있었던 나는 과거를 버리고 상품군별로 다양한 레이아웃, 다양한 구성, 다양한 시도를 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에게 큰 참고자료, 큰 교과서 역할을 했다. 일본의 Technical Communication Association에 기업 회원으로 가입하고 매년 열리는 JTCA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당시 일본 제조사 매뉴얼에 시도되고 있던 다양한 트랜드를 습득했다. 당시 일본의 산업구조가 한국의 산업구조와 유사했기 때문에 다양한 소비자 전자 제품과 자동차 매뉴얼에 대한 제작 방법론, 새로운 기술이 심포지엄에서 논의되었고 제작 사례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용자 중심의 매뉴얼, 시각적인 도구를 최대한 활용한 매뉴얼, 이해하기 쉽고, 따라하기 쉽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쉬운 매뉴얼, 일반 소비자에게 필요한 매뉴얼의 기본 원칙에 대한 많은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

일본, 미국, 독일, 중국의 TC 컨퍼런스를 통해 글로벌 트랜드를 익혔다

글로벌 기준을 따라잡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일본을 넘어 미국의 Society of Technical Communication, 독일의 tekom, 중국의 TC 관련 행사까지 참석하면서 지역별로 차이나는 문화와 매뉴얼 제작 기술과 방법을 비교했고 한국의 방법론을 전파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Korea Technical Communication Association (KTCA)이라는 조직이 있었고 나는 KTCA 회장으로서 한국에서 국제적인 규모의 KTCA 컨퍼런스를 주최하기도 했다.

2014 KTCA국제행사

그동안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당시 40여명의 한샘글로벌 전 직원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2006년말 수원으로 다함께 이동했다. 사옥을 만들었고 조직은 더욱 체계를 갖추었다. 1990년 2명이었던 조직은 2024년 현재 글로벌리 170명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중국, 베트남, 미국으로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한샘글로벌 본사 사옥

글로벌 기준 넘어서기

고객사는 한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매뉴얼 개발 서비스가 주력이었던 우리는 매뉴얼 번역 현지화 서비스로 범위를 넓혀갔다. 8개국어 번역으로 시작했던 번역은 16개, 32개로 확장되었고 이제는 50개 언어는 상시 제작해야 했고 70개 언어까지는 주력 언어로 관리해야 했다.

번역서비스는 한샘글로벌의 주력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번역과 현지화 기술과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확보하고 관리해야 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매뉴얼 현지화 작업에 따른 다양한 오류를 최소화하고 국제 기준을 넘어서는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먼저 국제 표준에 도전했다. 언어 서비스 업계가 필요한 다양한 국제 표준 중에서 처음 획득한 국제 인증은 ISO 9001 품질 관리 표준이었다. 많은 제조사가 9001 표준을 획득하고 있지만 서비스 회사가 9001 표준을 취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구나 ‘매뉴얼 개발’이라는 분야로 ISO 9001 표준 인증을 취득하고자 기관에 신청했을 때 그들의 당혹스러움은 우리에게도 당혹스러웠다. 매뉴얼 개발을 수주받아서 진행하는 서비스 업체에서 품질 관리의 기준을 설정하고 품질 개선을 지표로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기준을 모두 만들었고 통과했고 2011년 한국은 물론 아시아지역에서 최초라는 매뉴얼 개발 분야로 ISO 9001 인증을 취득한 이래, 지금까지 표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어서 번역 서비스에 관한 여러 국제 표준을 이어서 취득하게 된다. ISO 18587 기계 번역 사후 편집에 관한 표준, ISO 17100 번역 품질 프로세스를 확립하는 표준, IEC/ISO 27001 정보 보안 관리 표준까지 모든 국제 표준 인증을 취득했고 사내의 조직 관리와 프로세스를 국제 기준에 맞추었다.

1990년 인쇄된 매뉴얼이 주력이었던 시절 시작된 매뉴얼 개발은 종이에서 디지털로 변화되어 갔고 우리는 다양한 매체로 매뉴얼을 만들었고 최적화된 방법을 찾고자 했다.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진 매뉴얼 쇼릴: https://www.youtube.com/watch?v=N4lu4TB3CxA

Mobile App manual

기기에 최적화된 온라인 매뉴얼로 방법이 정착되고 인쇄 매뉴얼과 온라인 매뉴얼을 동시에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구현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뉴얼을 제작한다는 것은 몇 가지 저절로 갖춰지는 기술이 있다:

  •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깊다. 사용 정보를 대하는 소비자의 심리, 행동 패턴을 알고 있다.
  • 제품에 대한 이해가 싶다. 제품의 기능, 사용법, 특장점, 이전 제품이나 경쟁사 제품과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 사용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라이팅 기술력이 있다.
  • 사용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디자인 기술력이 뛰어나다.
  • 제조사의 현황에 대한 이해가 깊다. 수 십 년을 함께 일하다 보니…

우리는 이 같은 우리의 장점을 접목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아이템을 찾았다. 바로 B2C기업이 판매 현장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리테일 마케팅 자료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이미 갖춰진 경험과 지식이 제조사가 판매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신제품에 대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고 신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비자 교육 자료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 기획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샘글로벌의 리테일 마케팅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이제는 우리의 또다른 경쟁력이 되었다.

한샘글로벌 리테일 마케팅 쇼릴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lGZRom63YOE

창대한 끝을 향하여

우리는 한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경험과 기술은 전 세계 어느 고객사를 맞아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경험은 번역과 현지화 시장에서 많은 경쟁력이 있었다. 분야는 다양했다. 미디어 분야, 이러닝 분야,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 많은 기업들이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현지화 파트너를 찾고 있다. 글로벌 현지화 업계에 도전장을 낸 지금,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새롭게 맞이하고 있지만 반드시 해내겠다는 각오로 달리기 시작한다.

전문성있는 언어 자원을 더 많이 확보하고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까지 주요 지역의 Production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The Languages Serviced by Hansem Global

글로벌 번역 업계와 공조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 들이고 방법론을 구축하고 있다. 한샘글로벌은 이제 언어 서비스 시장에서 글로벌 탑 100위권 안에 안정적으로 진입했고 글로벌 언어 시장에서 한샘글로벌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활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언어 서비스 리서치기관인 Nimdzi, CSA, Slator가 보고한 글로벌 100 LSP에 진입한 한샘글로벌

한샘글로벌을 지원하는 힘 1

한샘글로벌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지금까지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한샘글로벌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어려운 순간을 함께 헤쳐 나왔다. 많은 이들이 경남 창원에서 수원으로 함께 이동해 왔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 헌신과 열정은 많은 고객을 감동시켰고 한샘글로벌이 34년을 생존하게 한 가장 큰 힘이다.

한샘글로벌의 핵심 인재들. 주요 부서의 리더들이다.

한샘글로벌을 지원하는 힘 2

한샘글로벌과 함께 하는 고객사는 무엇보다도 큰 힘이다. 기업들 또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 생존 기간을 연장해 가는 일년 일년이 결코 꽃길이 아니다. 해외 시장의 현황을 볼 때 마다 가열찬 경쟁을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는 많은 한국 기업의 애로가 느껴진다. 한샘글로벌이 그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고 그들의 창대한 끝을 보는 그날까지 함께 달릴 것이다.

전담 제작팀이 있는 주요 고객사

내일의 한샘글로벌

내일 우리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세계 시장의 변화는 빠르고 경쟁은 치열하다. 한샘글로벌의 외국인 직원이 쓴 ‘조시가 본 한샘글로벌’이라는 기사에서 조시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It is hard to say what the future holds for Hansem. We can see how the world has been turned upside down by technology over the last 30 years. Certainly, the next 30 years will see similar leaps in technology. It is not possible to understand what the world will look like in the future, but I believe in Hansem’s ability to adapt to change as it has done in the past. On behalf of everyone at Hansem, I hope that we can help each other navigate whatever lies ahead.”

맞는 말이다. 한샘글로벌의 장점은 변화에 적응해 가는 힘이다.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헤쳐 왔듯이 앞으로도 우리는 어려움을 헤쳐 갈 길을 찾아 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성장이 지역 사회와 기업과 동종 업계에 힘이 되고 격려가 될 수 있도록, 눕지 않고, 옆길로 가지 않고, 바르게 서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