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의 번역 메모리는 이런 관리가 필요합니다

번역 메모리(Translation Memory, 이하 TM)는 번역을 하면 자동으로 쌓이지만, 자동으로 최신 상태가 되지는 않습니다. 파생 제작이 이어지는 매뉴얼 번역 프로젝트에서는 TM이 다음 문서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산출물에는 반영되었지만 TM에는 들어가지 않은 변경을 사람이 되돌려 넣어야 합니다. 이 작업을 생략하면 매치율이 떨어지고, 이미 수정된 문장이 다음 매뉴얼에 다시 나타납니다.

TM은 저절로 쌓입니다

TM은 번역한 문장을 원문과 번역문의 쌍으로 저장해 두는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번역 도구에서 작업하면 문장 단위로 자동 저장되고, 다음 번역에서 같거나 비슷한 원문이 나오면 저장해 둔 번역을 꺼내 보여 줍니다.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매치율로 표시되며, 원문이 완전히 같으면 100% 매치입니다.

TM은 Trados나 memoQ 같은 표준적인 번역 플랫폼에서 작업하면 작업의 부산물로 생깁니다. 따로 만들려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번역을 하면 자동으로 생성되고 번역이 반복되면 TM의 데이터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번역 공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TM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자동으로 쌓이는데 무엇을 더 관리하라는 것인가.

매뉴얼 현지화처럼 비슷한 문서가 여러 언어로, 여러 해에 걸쳐 반복되는 작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더 관리해야 하는지가 이번 기사의 주제입니다.

먼저, 어떤 프로젝트의 이야기인가

TM을 추가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은 모든 번역 프로젝트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번역 서비스에서 요청되는 계약서, 마케팅 자료, 웹사이트, 영상 번역 등 한 건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번역해 납품하면 끝나는 프로젝트는 단기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에서 발생한 TM은 요청한 고객사에 번역물과 함께 납품하면 작업은 종료됩니다. 고객사에 도착한 TM도 향후 유사 작업을 대비해서 보관할 뿐 특별하게 “관리”라는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TM이 자산이 되어 따로 “관리”가 필요해지는 것은 다음 조건에 해당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같은 제품군의 후속 모델 매뉴얼이 계속 나온다
  • 하나의 원문에서 여러 언어판이 동시에 나간다
  • 문서의 수명이 발행 시점에 끝나지 않고 개정으로 이어진다
  • 규제 문안이나 안전 문구처럼 반복 적용되어야 하는 문장이 있다
  • 현지 검토자가 언어별로 붙어 있다

두세 개 이상 해당한다면 그 TM은 관리 대상입니다. 매뉴얼 현지화나 사용설명서 다국어 번역처럼 같은 제품군의 문서가 해마다 반복해서 나가는 프로젝트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기록에서 기준으로

일회성 번역에서 TM은 결과의 기록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남겨두는 것이고, 다시 꺼내 볼 일은 많지 않습니다.

파생 매뉴얼에서는 TM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다음 모델의 매뉴얼은 이전 문서에서 파생되고, 그 파생 작업의 출발점이 TM입니다. TM에 들어 있는 문장이 다음 문서에 그대로 올라옵니다. 이 시점에 TM은 기록이 아니라 기준이 됩니다.

기록은 틀려도 참고 자료일 뿐이지만, 기준이 틀리면 다음 산출물이 틀립니다. 그것도 매치율이 높을수록 더 조용히, 더 광범위하게 틀립니다. 검토자는 100% 매치 구간을 다시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생 환경에서 TM 관리의 목표는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쌓인 것이 지금도 맞는 상태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TM이 최종 산출물과 달라지는 네 지점

자동 생성만으로는 TM이 최신 상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실제 매뉴얼 번역과 현지화 공정에는 자동으로 반영되지 않는 구멍이 있습니다. 네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가. 출시 직전에 발생하는 변경

매뉴얼 제작 막바지에는 한두 문장만 바뀌는 일이 계속 생깁니다. 사양이 수정되기도 하고 문구가 교체되기도 합니다. 이때 전체 파일을 다시 번역 공정에 태우지 않습니다. 시간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 문장만 처리해서 산출물에 반영합니다.

산출물에는 반영되었지만 전체 파일의 TM에는 그 변경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음 파생 작업 때 그 자리에는 여전히 이전 문장이 100% 매치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100% 매치이기 때문에 아무도 다시 읽지 않습니다.

나. 번역을 거치지 않고 들어온 문장

현지 판매 법인이나 거래처가 자기 시장에 맞는 문구를 직접 보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규제 요건에 따라 특정 문안이 지정되어 내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장들에는 원문과 번역이라는 쌍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과물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적용되어야 한다면 TM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들어가 있지 않으면 다음 파생에서 누락되거나 다시 번역되어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이때는 원문 쪽 짝을 사람이 만들어서라도 등록해 둡니다.

다. 현지 판매자가 보내온 수정

가장 양이 많은 지점입니다. 앞의 나 항목이 번역을 거치지 않고 내려온 확정 문안이라면, 이쪽은 이미 번역해 완성한 문서를 보고 고쳐 달라고 보내오는 의견입니다. 현지 판매 법인이나 고객 측 검토자가 발행 직전에 문서를 확인하면서 보냅니다. 언어별로 현지 검토자가 붙는 구조라면 언어 수만큼 피드백이 들어옵니다.

이 수정은 산출물에 반영됩니다. 그러나 이 수정은 TM에도 반영해야 합니다. 반영하지 않으면 TM에는 실제로 발행된 것과 다른 문장이 저장되어 있게 됩니다.

라. 구버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같은 원문에 대해 여러 번역이 TM에 공존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사양이 바뀌면서 표현이 달라졌거나, 용어 정책이 변경된 경우입니다. 어느 것이 현행인지 상태 표시가 없으면 도구는 그중 하나를 제시하고, 작업자는 제시된 것이 최신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항목마다 현행 여부를 상태로 표시해 두고, 구버전은 검색에 걸리지 않도록 처리해 두어야 합니다.

TM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TM 관리 필요성을 인식했다면 관리 방법은 각 번역사나 제조사 문서제작팀에서 자신들에게 맞는 방향으로 수립하면 됩니다. 한샘글로벌의 경우는 20년 이상 글로벌 제조사의 매뉴얼 현지화 작업을 반복하면서 TM 관리 필요성과 함께 관리 방법을 정립했습니다. 이 장부터 이어지는 세 개 장에서 소개하는 절차는 한샘글로벌이 정립해 실제로 운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고, 참고하셔서 각 사의 공정에 맞게 조정하시면 됩니다.

만일 각 지역 판매처 담당자가 자신들의 지역 언어 버전에 수정할 내용을 PDF에 표시해서 보내왔다고 가정합시다.

먼저 그 문장이 TM의 어디인지 찾아야 합니다

수정은 번역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TM을 검색하려면 원문이 필요합니다. 원문을 알아야 해당 항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역본 PDF의 수정 위치를 보고 원문 PDF의 대응하는 부분을 찾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장애물이 나옵니다. 두 문서의 페이지 번호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언어에 따라 분량이 달라지면서 페이지가 밀리기 때문입니다.

원문 문장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TM을 검색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장애물이 나옵니다. 문장 안에 UI 문자열이나 줄바꿈 방지 표시 같은 태그가 섞여 있으면 그대로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태그 부분과 나머지를 분리해 입력해야 합니다.

후보가 여러 개 걸리면 조건을 겹칩니다. 특정 문자열을 포함하는 항목으로 좁히고, 그래도 많으면 문장 길이 조건을 더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를 특정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수정 코멘트 하나마다 반복합니다. 언어가 스무 개면 스무 벌의 피드백에 대해 각각 반복합니다.

찾았다고 바로 고치지 않습니다

항목을 특정한 다음에도 바로 수정하지 않습니다. TM에 저장된 번역과 PDF에 인쇄된 번역이 같은지 먼저 대조합니다.

둘이 다르다면 그 자체가 신호입니다. 어느 시점엔가 TM과 산출물이 갈라졌다는 뜻이고, 그 원인을 확인하기 전에는 수정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이미 어긋난 상태 위에 새 오류를 쌓게 됩니다.

모든 수정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고객이 보낸 수정이니 그대로 넣으면 될 것 같지만, 반영하기 전에 멈추고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우들은 담당자의 감각에 맡기지 않고 목록으로 정해 두어야 합니다.

멈추고 확인하는 경우이유
안전 문구나 잠금 처리된 항목을 바꾸는 수정규제·안전 검토를 거쳐 확정된 문장입니다. 개별 검토자가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표준 용어 자체를 바꾸는 수정한 문서에서 바꾸면 같은 용어를 쓰는 전 제품군의 일관성이 깨집니다.
언어 스타일 가이드에 어긋나는 수정개인 선호와 확립된 기준이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의미를 바꾸거나 내용을 더하고 빼는 수정번역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원문 자체를 손대야 하는 사안일 수 있습니다.
TM의 번역과 PDF의 번역이 서로 다른 경우앞 장에서 본 상황입니다. 원인 규명이 먼저입니다.
같은 문장이 서로 다르게 수정된 경우그대로 반영하면 TM 안에 모순이 생깁니다.

이 경우에 해당하면 반드시 확인을 거쳐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확인을 받는 상대는 회사마다 다릅니다. 그 문서의 발행을 책임지는 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확인이 필요한 항목의 공통점

모두 하나의 문서를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전체 자산에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TM은 다음 제품과 다른 언어판으로 계속 흘러갑니다. 지금 반영한 한 줄이 다음 해에 수십 개 문서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개별 문서 관점에서 옳은 수정이 자산 관점에서는 틀린 수정이 될 수 있습니다.

TM 관리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TM 갱신을 언제,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흔한 방식이 세 가지 있는데 한샘글로벌의 경험으로는 셋 다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방식무엇이 문제인가
변경이 생길 때마다 즉시작업 흐름이 끊깁니다. 그리고 검수를 통과하기 전 상태가 TM에 들어갈 위험이 큽니다.
담당자가 알아서 판단확인이 필요한 항목을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게 됩니다. 무엇이 반영되었고 무엇이 보류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 않음가장 흔한 선택입니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치율은 서서히 떨어지고, 그 하락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할 수 없게 됩니다.
  • 공정의 정식 단계로 등재. TM 갱신이 프로젝트가 끝난 뒤 여력이 있을 때 하는 일이 되면 곤란합니다. 번호가 붙은 공정 단계여야 합니다. 단계로 등재되어야 완료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완료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종료 처리하지 않게 됩니다.
  • 등록 기준. 무엇을 등록하고 무엇을 보류하는지, 구버전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규정합니다. 앞 장에서 정리한 확인 항목이 여기 들어갑니다.
  • 지정된 관리자. 작업자 각자에게 맡기지 않고 한 사람이 책임집니다. 반영 여부를 확인하고 기준을 갱신해 작업자에게 공유합니다.
  • 이력. 어느 프로젝트의 어느 언어를 누가 언제 반영했는지, 몇 건이었고 얼마나 걸렸는지가 남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누락을 발견할 방법이 없습니다.

등록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신규 번역을 TM에 올리는 일조차 파일을 통째로 넣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파일에서 이번에 새로 번역된 항목만 골라내고, 상태를 표시하고, 그 상태의 항목만 마스터 TM으로 가져옵니다. 가져올 때는 기존 항목을 덮어쓸지 여부를 정하고, 누가 검수한 것인지 출처를 필드에 기록합니다.

출처 기록이 왜 필요한가. 나중에 어떤 문장의 품질이 의심될 때, 그것이 어느 경로로 들어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없으면 TM 전체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TM은 누구의 자산인가

TM은 협력사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작업이 거기서 일어나므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관리를 맡기는 것과 자산을 넘기는 것은 다릅니다. 협력사를 교체하게 되었을 때 축적된 TM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면, 그동안 쌓은 복리가 그 시점에 초기화됩니다.

계약에 반출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 두시고, 정기적으로 받은 사본이 실제로 열리는 상태인지도 점검해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TM 관리는 자동화되지 않습니다

기술 문서 다국어 번역에서 TM 관리 작업의 상당수는 자동화되지 않고, AI가 알아서 해 주지도 않습니다.

자동으로 처리되는 것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것
중복 항목 탐지TM 수정이 확인 절차를 추가로 거쳐야 하는 항목에 해당하는가
태그·서식 오류 검출이 변경이 지속 적용될 것인가, 이번만인가
용어집 위반 탐지짝이 없는 문장에 원문을 만들어 넣을 것인가
매치율 통계 산출TM과 산출물이 어긋난 원인이 무엇인가
형식 불일치 표시이 수정이 오류 교정인가, 현지 선호에 따른 변형인가

오른쪽 열의 판단들은 문장만 보아서는 내릴 수 없습니다. 그 제품이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같은 문장이 다른 언어판에서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정보는 문장 안에 없고 프로젝트 이력에 있습니다.

TM을 관리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매치율이 올라갑니다. 최신 문장이 제대로 등록되어 있으면 다음 파생에서 잡히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새로 번역할 분량이 줄어들면서 기술 문서 다국어 번역에 들어가는 비용도 함께 내려갑니다.
  • 정확성이 올라갑니다. 매치율보다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매치되는 문장을 신뢰할 수 있게 되면 검토 범위를 좁힐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으면 매치율이 높아도 전부 다시 읽어야 하고, 그러면 TM이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 일관성이 지켜집니다. 확인 절차가 작동하면 개별 검토자의 선호가 전 제품군의 표준을 흔드는 일이 줄어듭니다.
  • 누락이 줄어듭니다. 특히 규제 관련 문장처럼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 다음 문서에서 빠지는 일이 줄어듭니다.